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Op.125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Op.125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의 하나이다. 베토벤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웅장한 구상을 가진 곡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교향곡 제9번이 19세기와 20세기 음악사에 미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고 강력하며, 그 범위는 단지 교향곡이라는 장르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지막 악장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포함된 것은 교향곡에서는 사상 초유의 구성이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곡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는 세계 모든 국가와 민족 사이의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제9번 교향곡이 지닌 이러한 상징적인 힘을 강조하며 많은 오케스트라가 전통적으로 제야에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 1956년~1964년 올림픽 경기에서는 제4악장의 첫 소절을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주의공화국 단일팀의 국가(國歌)로 활용하기도 했고, 훗날 다른 나라들도 가사를 달리 붙여 자기 나라의 국가로 이용하기도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교향곡 제9번은 동독과 서독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유럽 전체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인류의 기억과 의식은 교향곡 제9번이 지니는 의미를 증언하고 있다.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베토벤이 곡을 붙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1793년 이전이었으나 완성된 때는 30년 뒤 1823년 겨울이었다. 교향곡에 성악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베토벤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교향곡에 성악, 합창을 도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다.

베토벤의 친구인 안톤 쉰들러는 후일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4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하면서 베토벤은 전에 없이 무척 힘들어했다.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적절하게 도입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토벤은 방에 들어와서 “해냈어, 드디어 해냈다고!”라고 소리치면서 `불멸의 실러 환희의 송가를 부르세’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보여줬다”

1. 작품의 개요 및 배경

이 곡은 베토벤 예술의 최고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고금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품의 하나이다.
베토벤이 항상 공감하고 애독했던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drich Schillers)의 장시 <환희의 노래> 에 의한 합창 붙임을 가진 교향곡이며, 네 사람의 독창과 대합창이 교향곡에 사용된 최초의 음악이다.

23살의 젊은 베토벤은 <환희의 노래>를 읽고 음악으로 옮기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실제로 <환희의 노래>가 교향곡에 담겨 완성된 것은 31년 뒤인 1824년이다. 베토벤이 처음으로 교향악과 칸타타의 결합을 시도한 것은 1808년의 《합창 환상곡》작품 80번에서였으며 이 시도 가 후에 ‘합창’교향곡이란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원래 베토벤은 9번을 성악이 없는 4악장짜리 기악교향곡으로 만든 뒤에, 10번 교향곡 전체에 성악을 넣은 “독일 교향곡”을 구상했으나, 여러 생각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9번 교향곡의 4악장에 합창과 성악을 넣기로 결정한다.

이 곡을 작곡할 때 베토벤은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음향의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무한한 고통과 싸워야 했고, 육체적인 건강의 악화와 가난 때문에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그는 고뇌를 맛본 환희를 영원히 노래 부르고 음으로써 표현한 것이다. 그는 예술에 의해 인간의 고난을 극복했으며 역경에 놓일수록 그것을 이겨나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단지 음악적인 감각과 인간의 도전 정신만으로 작곡한 곡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베토벤의 최대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곡이다. 또한 초연 후에는 관객의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여, 베토벤은 얼굴 표정이 어두웠지만, 성악을 부른 여자 성악가의 인도로 뒤를 확인하게 되어 그제서야 청중들이 박수를 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곡은 베토벤 스스로의 지휘로 초연되었지만, 실제로는 움파루프란 지휘자가 관객이 안 보이는 곳에서 따로 지휘했다고 한다. 이 곡은 2003년 세계 국제기관인 유네스코에서 음악유산으로 공식 지정되어,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최대의 명 걸작이다.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이기도 한 이 ‘제9번’은 교향곡의 역사성으로 보아도 획기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는데, 이는 처음으로 교향곡에 성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곡에 도입된 성악은 쉴러의 시를 바탕으로 한 네 사람의 독창과 혼성 합창으로 편성된 제 4악장인데, 뒷날 말러나 쇼스타코비치 같은 작곡가들의 악곡의 채찍이 되기도 한다.

특히 제 4악장에 등장하는 성악 ‘환희의 노래’는 이 곡이 작곡되기 이전, 베토벤이 만든 ‘합창 환상곡(1808)’의 멜로디가 한층 다음어져 도입되어 있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이색적 요소로 되어 있다. 베토벤은 쉴러의 ‘환희의 송가’라는 시를 사용하는 성악 도입 아이디어를 이미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숙성시켜 오다가 그것을 제 9번 교향곡의 (우연하게도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악장에 도입시켰다. 성악을 도입한다는 아이디어야말로, 이 곡을 교향곡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리 만큼 위대한 걸작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2.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un poco maestoso d단조 소나타 형식.

빠른 템포로 시작하는 서주가 매우 신비롭다. 강한 희구와 열망의 정을 표현하였다.
첫 16마디 동안 d단조의 딸림화음 중 3음을 생략한 빠른 음형을 연주하는 사이에 제 1주제에 주요 모티브가 잠깐씩 등장하다가 뒤로 갈수록 주요 모티브가 심화되어 크레센도로 제 1주제 혹은 제 1모티브군이 고조되어 등장한다. 이 주제가 제시된 이후에는 3음이 생략된 으뜸화음의 빠른 음형이 연주되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제 1주제가 다시 한 번 제시되지만, 후반은 생략되고 대신 주제의 일부 모티브의 단편들에 의한 새로운 모티브를 도입하고 제 2주제로 이어진다.

정상적으로는 D장조로 제시되어야 할 제 2주제는 장조로 되어 있다. 제 1주제와 달리 즐거운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이어지는 부분 역시 대체로 앞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때때로 제 1주제의 부분들을 섞어서 발전부로 진행한다.

고전적 소나타 형식과는 달리 제시부의 반복은 없다. 그 까닭은 이 악장이 너무 길게 되는 것을 피할 의도도 있으며 또한 주제가 그 성격이 상당히 분명하기 때문에 반복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발전부는 총 184마디로서, 세 부분으로 나눠 불 수 있다. 제 1부분은 제 1주제에 의한 모티브적 발전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팀파니의 38마디에 걸친 포르티시모 트레몰로는 관악기의 거센 포효와 함께 가히 장관을 이룬다. 재현부는 301마디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주제의 형태나 연결 방법이 제시부와 상당히 달라져 있다. 여기에서 제 2주제는 D장조로 재현된다.

코다는 마치 제 2의 발전부를 시작하려는 듯이 제 1주제, 푸가의 주제 들을 화려하게 등장시켜 투티로 클라이맥스에 도달 했다가 갑자기 반음계적 상행을 두 번 시도하여 새로운 클라이맥스를 확립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침내 제 1주제를 유니즌으로 힘차게 연주함으로써 당당하게 악장을 마무리한다.

제2악장 Molto vivace d단조 3/4박자 스케르초.

환희에 가득찬 악장이다. 고전 양식과는 달리 빠른 템포가 이어지며, 정열적이고 자유 분방한 호른의 난무가 생명의 리듬처럼 빛난다. 이 교향곡 중 가장 우수한 악장이다.

고전교향곡의 표준 순서에 따르자면 이 악장은 제 3악장이 되어야 할 것이고, 제 3악장으로 되어 있는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가 제 2악장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이 교향곡에서 왜 이처럼 악장의 순서를 바꾸었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들을 시도하고 있으나, 정작 베토벤 자신은 아무 이유도 말한 바 없다. 이 악장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속도가 극히 빠르다는 점, 그리고 팀파니가 통상 5도로 조율되지 않고 F음의 옥타브로 조율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이것은 스케르초 시작 부분에서 푸가 첫음들의 움직임을 모방하기 위해서이다. 푸가 악구는 3도 음정 단위들을 순차로 채워 넣은 것들의 연결로서 제 1바이올린이 피아니시모토로 제시한다. 중간 부분에서 목관악기들이 에피소드를 연주한다. 트리오는 2/2박자로 바뀌어 프레스토로 연주된다. 자체로서 3부 형식을 만들고 있는 바, 주선율은 호른으로 연주된다. 여기에 바순에 의한 대선율이 결합하여 대위법적 발전을 보인다.

제3악장 Adagio molto e cantabile B-flat장조 4/4박자 변주곡 형식.

세련되고 정열적이면서도 시적인 정서가 듬뿍 담긴 악장이다. 이 악장은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주제로 변주적 병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마디 도입부를 거쳐 첫 주제가 바이올린에 의해 유도되면 목관이 그것을 반향한다. 두 번째 주제는 첫 주제의 장 3도 위의 조성인 D장조로서 템포는 안단테 마에스토소로, 그리고 박자는 3/4박자로 바뀌어진다. 당김음 리듬으로 기품있는 무곡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 두가지 주제의 반복, 변주, 전조 등의 절차를 지나 코다로 이어져 다음 악장으로 쉬지 않고 넘어간다.

제4악장 Presto Allegro assai / Presto D장조 4/4, 3/2박자.

굳이 형식을 말한다면 변주곡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환희의 송가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이 많은 투쟁을 체험해야 하며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듯한 이 악장은 프레스토 관현악에 의한 기괴한 소음으로 시작된다. 이 소음이 저음 현악기의 레시타티브에 의해 여러번 중단되다가 제 1악장의 첫머리가 나타난다.

다시 레시타티브가 있고 제 2악장의 부분이, 또 레시타티브를 연주한 다음 제 3악장의 선율이 회상되고는 합창의 모티브가 목관에서 나타나고 나서 비로서 저음 현악기에서 환희의 선율이 고조되어 간다. 다시 억센 소음이 나타나지만, 이것은 베토벤 자신이 쓴 바리톤 레시타티브에 의해 압도된다. 독창은 계속되어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베토벤을 모델로 하여 [장 크리스토프]라는 명작을 남긴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베토벤을 가리켜 그는 이제 승리자였다. 그는 인간의 옹졸함을 정복한 승리자였다. 자기 자신의 운명과 비애를 극복한 승리자였다고 말했다. 이 작품, 특히 제 4악장은 로맹 롤랑의 말을 실감케 한다.

관현악 서주로 시작되는 변주곡 형식의 악장이라 할 수 있으나, 형식보다는 고뇌를 이겨내고 환희에 도달하는 음악 내용이 압도적인 힘으로 우리를 제압한다. 먼저 관악기만으로 숨가쁜 곡취를 나타내다가 점차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에 의한 레치타티보풍 가락을 무반주로 제시한다. 마침내 ‘환희’의 주제가 관현악 전체에 의해 나타나며, 이윽고 곡은 알레그로 아사이, B장조, 4/4박자로 되어 ‘환희’의 주제가 되풀이 한다.

“오! 벗이여, 곡조를 바꾸어 우리 더욱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는가!”라는 바리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베토벤이 작사한 가사 이후 실러의 시에 따른 “환희여, 아름다운 산들과 같이 찬란한 낙원의 처녀여! 우리를 불꽃처럼 취하여 황혼에서 그대의 하늘과도 같은 성역에 발을 딛노라……” 등의 노래가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둥글게 뭉쳐라. 황금의 술에 맹세를 걸어라. 충실함은 그대의 영원한 약동, 저 하늘의 아버지에게 바치나이다……”
위와 같이 긍정적인 인생관과 기쁨의 세계관을 고조시키는 클라이맥스로 끝난다.

4. 초연 

초연은 1824년 5월 7일에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베토벤의 입회 하에 미하엘 움라우프의 지휘로 《장엄미사》의 “키리에”, “크레도”, “아뉴스 데이”나 서곡 《헌당식》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당시 빈에서는 로시니의 오페라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토벤은 당초 빈 청중에게는 자신의 음악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베를린에서 초연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베토벤을 지원했던 리히놉스키 백작 등의 주선으로 빈 초연을 요청하는 탄원서가 만들어지자 베토벤은 베를린 초연을 포기했다.

《합창》의 초연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있다.

참석자의 증언에 따르면, 《합창》의 초연은 리허설 부족(2회의 전체 리허설 밖에 없었다)에 의해, 상당히 불완전했다는 시사가 있다. 소프라노 솔로의 존탁은 18세, 알토 솔로의 웅거는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가세했고, 남성 솔로 두 명은 초연 직전에 변경되어(바리톤 솔로의 자이페르트가 악보를 받은 것은 초연 3일 전으로 알려짐) 솔로 파트는 상당한 불안감을 안고 초연을 맞고 있었다.

게다가 총 연습 회수가 2회로 적고, 관악기의 엑스트라까지 갖춘 것이 초연 전날이어서 일정상 빠듯했으며, 연주자는 아마추어가 많이 가담하고 있었다(오랜 전쟁으로 프로 연주가는 일손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초연 기획 단계에서도 “빈에는 공연 피아니스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덧붙여 합주의 탈락이나 붕괴를 막기 위해 피아노가 참가해 합주를 리드하고 있었다. 이것은 베토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클레멘티도 자작의 교향곡 때 피아노를 이용, 피아노 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자꾸 어긋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5. 추천 음반

 

Ferenc Fricsay
1. 페렌츠 프리차이(Ferenc Fricsay)/베를린 필하모닉, 1957. DG.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합창’을 대표하는 지휘자는 물론 카라얀일 것. 하지만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 페렌츠 프리차이는 카라얀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합창’으로 또 하나의 드라마를 남겼다. 말하자면 이 녹음에는 카라얀 이전의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느낄 수 있었던 향취가 담겼다. 게다가 프리차이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음악성, 그가 짧은 생애를 통해 보여줬던 음악적 진정성은 듣는 이의 마음을 온전히 음악에 집중케 한다. 독창진도 좋다. 이름가르트 제프리트(소프라노), 마우렌 포레스터(알토), 에른스트 회플리거(테너),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가 포진했다.

Wilhelm Furtwängler
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1951, EMI.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열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던 실황이다. 영국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리마스터링했다. 가장 권위 있는 ‘합창’으로 평가받는 기념비적인 녹음이다. 독창자로는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소프라노), 엘리자베스 횡겐(알토), 한스 호프(테너), 오토 에델만(베이스)이 포진했다. 음색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고난을 뚫고 환희로 나아가는 드라마틱함, 아울러 중후한 낭만성이라는 측면에서 단연 1순위에 놓이는 음반이다. 나치 시절을 힘겹게 살아내야 했던 푸르트벵글러의 생애가 오버랩되는 연주이기도 하다. 모노녹음이다.

Herbert von Karajan
3.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베를린 필하모닉, 1976, DG.

카라얀이 남긴 ‘합창’ 녹음은 여러 편이다. 어느 것이나 들을 만한 연주다. 오늘 추천하는 1976년 리코딩은 독창진이 특히 돋보인다. 안나 토모바 신토프(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콘트랄토/알토), 페터 슈라이어(테너), 호세 반 담(바리톤)이 포진했다. 카라얀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장기가 잘 드러나는 연주일 뿐 아니라, 1980년대의 녹음에 비해 오히려 강렬한 맛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2악장에서 팀파니가 전해주는 음향적 쾌감, 또 3악장에서 들려주는 선율미도 빼어나다. SACD로도 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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